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틴 루터 (문단 편집) === 성서학 === >[[야고보서]]에 대한 관점은 새로운 연구에서 부분적으로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문학적 평가만이 아니라 신학적 평가에도 해당된다. 이 서간의 '복권'도 종종 논의된다. 이것은 야고보서에 대한 (특히 루터파 신학에서의) 전통적인 평가절하에 대한 반동{{{-2 反動}}}을 의미하거니와, 오늘날 많은 주석자의 판단에 따르면, 루터는 야고보서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했다. 1522년 『9월 성경』 서문에 들어 있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야고보서는 '온통 짚으로 된 서간'이니, '복음적인 성격의 것이라곤 전혀'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WA,DB 6,10). >---- >[[https://de.wikipedia.org/wiki/Matthias_Konradt|마티아스 콘라트{{{-2 Matthias Konradt}}}]], "야고보서", 마르틴 에브너{{{-2 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2 Stefan Schreiber}}}(Hrsg.) 《신약성경 개론》{{{-2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765쪽, 777쪽 >마르틴 루터는 6장과 10장의 속죄 신학에 대한 날카로운 의구심을 표명했다. 루터는 히브리서를 거리를 두고 대해야 할 문서들 안에 자리매김했고, 자신의 독일어 성경에서는 아주 뒤에 (요한의 편지들과 야고보서 사이에) 배치했다. >---- >[[https://de.wikipedia.org/wiki/Martin_Karrer|마르틴 카러{{{-2 Martin Karrer}}}]], "히브리서", 마르틴 에브너{{{-2 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2 Stefan Schreiber}}}(Hrsg.) 《신약성경 개론》{{{-2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729쪽 루터의 성서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책은 로마서이다. 1516년에 나온 루터의 로마서 주석이 종교개혁의 출발점으로 여겨질 정도로, 루터에게 있어서 로마서는 "모든 책의 심장이며 정수"였다. 다만 루터는 자신의 신학적 호오에 따라서 성경의 책들을 편향해서 독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매우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야고보서]]와 [[히브리서]]에 대한 루터의 평가인데, [[바울로]] 신학과 이루는 긴장 관계를 이유로 야고보서를 '짚으로 만들어진 서간'{{{-2 (Stroheme Epistel)}}}으로까지 비유했으며, 히브리서의 순서를 아예 신약의 뒷부분으로 밀어버렸다.[* 때문에 루터 성경에서는 필레몬-히브리-야고보-베드로-요한-유다로 이어지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통상적인 신약 순서와는 달리, 필레몬-베드로-요한-히브리-야고보-유다라는 독자적인 순서를 따른다.] 물론 신앙적인 관점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신약의 책들에 대해서 비판을 할 수는 있지만, '오직 성경'이라는 슬로건을 생각하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에서도, 야고보서에 대한 루터의 극단적 비판과 독자적 신약 순서는 통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참고로 위에서 인용된 콘라트와 카러는 개신교 신학자이다.] 게다가, 최근 바울 신학에 대한 연구성과가 축적되며 루터가 바울의 로마서에 나타난 구원관을 오독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루터는 바울의 구원관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한다는 [[이신칭의]]로 요약했다. 즉 믿음과 행동, 즉 실천을 분절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바오로 신학에서 믿음과 행동을 루터처럼 엄격하게 구별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왜냐하면, 바오로가 믿다 또는 믿음으로 쓴 그리스어는, 단순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종교를 믿다, 또는 그리스도를 믿다라는 뜻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바오로가 사용한 믿음이란,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를 의지하는 단순한 믿음을 넘어,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듯 자신의 생활이나 행동까지 철저히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0:31의 유명한 구절인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나, 갈라디아서 2:20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는 그의 구원관이 곧 믿음이 행동과 생활, 인생의 전면적인 변화를 상정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루터가 파악한 것처럼 믿음에 의한 구원과 행위에 의한 구원으로 이분법적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포괄적이고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오로에게는 믿음이 곧 행위이자 실천이요, 행위가 곧 믿음이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